예수님의 뒷모습
1월 다섯째주 연중 제4주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루카 4.21-30)
예수님의 뒷모습
(최인형 수녀. 노틀담 수녀회)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그분이 마뜩잖았나 보다.
내겐 고향사람들이 아니라 가족들이 수녀로 사는 것을 대놓고 싫어했다.
입회 전날. 자는 척하는 내 얼굴위로 굵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면
밤새 울던 어머니는 입회. 서원식 때 성당 안은 안들어간다며 버티시더니
끝내 종신서원에는 안 오셨다.
기쁜 날 마음 무겁게 애태우던 부모님도 하늘나라로 가시고.
세월이 흘러 좀 나아질 줄 알았더니 동생들이 더 했다.
우리가 왜 사랑하는 언니를. 누나를 보고 싶을 때 못 보고
늘 남들에게 내어줘야 하냐? 며 집안에 부침이라도 있을 때면
원망은 애꿎은 하느님과 내 몫이기도 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어머니는 다섯 남매를 쪼르륵 앉히고
큰언니가 대학생이 되었으니 반 어른이야.
엄마도 반말 안 할 테니 너희도 그래야 해 ..하셨다.
아홉 살 차이 막냇동생은 유독 나를 잘 따랐고.
잘 때면 내 손을 꼭 쥐어 자기 가슴에 얹어 놓아야만 잠이 온다며
자기가 얼마나 날 좋아하는지 강조하곤 했다.
그랬던 동생이 내가 수녀가 된 후로는 내리 반말을 했다.
동료들은 수도복 입은 후부턴 가족들이 존댓말을 하니 어색하다던데
동생은 남들에겐 수녀님이겠지만 내겐 언니니까 반말 할 거야.
난 신자가 아니라 가족이라고!
우릴 사랑하면 함께 살아야지..하며
날 좋아하는 영역과 싫어하는 수도 생활의 경계를 구분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괴로웠다.
가족들을 만나면 늘 기가 죽었다.
반대 받던 사라도 애낳고 열심히 살다 보면 누그러진다..고 하는데
우리 가족들은 그런 너그러움과도 거리가 멀었다.
착복. 서원. 종신서원. 은경축까지
내 생애 특별한 기념일에 가족사진은 단 한 장도 없다.
가끔은 가족들의 응원과 기도 속에서 살아가는
사제나 수도자들이 부러워 내가 뭘 그리 잘못했을까? 혼자 되묻곤 한다.
멀리 있는 이보다 가까운 이들의 인정과 평가가 훨씬 박하다고들 하지만
사랑하는 이들에게 반대 받는 표적이 되어 견뎌내는 건 언제나 아프다.
존경까지는 바라지도 않지만 내 선택을 존중 해 주기만 해도 좋으련만...
아. 좋은 점도 있다!
어려움이 있을 때 더욱 잘 견디게 된다.
예수님조차 자란 터에서 배척 받으셨는데
그 길을 따르기로 결심한 나는 마땅히 더 그래야 할 것 아닌가.
비난. 무시. 편견. 몰이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 한 가운데를 뚜벅뚜벅 걷는 예수님은 얼마나 멋진가?
가족들을 생각하면 가슴 에이기도 하나
눈물 쓱쓱 훔치고 그 뒤를 따라 걷는다.
하지만 그렇게 여여하게 걷는 예수님의 뒷모습이 짠한 건 어쩔 수 없다.
(가톨릭 다이제스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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