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3주 금요일(마르 4,26-34) <기다림과 견딤 ♣>작은형제회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기다림과 견딤 ♣
“겨자씨가 땅에 뿌려지면 자라나서 어떤 풀보다도 커진다.”(마르 4,32)
연중 3주 금요일 /마르 4,26-34
오늘의 인간은 급속도로 발달한 과학과 정보 수단, 지식의 융복합화, 세계화의 흐름 속에 손가락 하나만으로도 순식간에 엄청난 일을 처리하고 이루어낸다. 이런 상황에 익숙해져가면서 ‘인간의 소중함’보다는 더 빠른 성과, 더 큰 외형, 더 많은 물질을 추구하는데 열을 올린다. 이런 가운데 작고 하찮아 보이는 사람들, 별 의미 없어 보이는 것들을 소홀히 할 때가 많다. 뿐만 아니라 어떤 일이 제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쉽게 포기해버리곤 한다. 이러한 ‘기다리지 못하는 성급함’과 ‘견딤의 부족’은 영성생활에도 걸림돌이 됨을 새롭게 자각했으면 한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저절로 자라는 씨앗의 비유(4,26-29)와 겨자씨의 비유(4,30-32)를 통하여 사소한 것에 담겨 있는 하느님 나라를 알아보도록 가르치신다. 예수님을 따라 다니던 군중들이 그분과 함께 도래한 하느님 나라를 믿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를 믿어라”, 내가 아무리 미소해보여도 내가 지금 활약하고 선포하는 이 하느님 나라는 대단한 위력을 지니며, 그 나라는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라고 하신다. 하느님 나라는 시초에는 보잘것없을지라도 어김없이 올 뿐만 아니라 이미 예수님과 함께 시작되었다.
저절로 자라는 씨앗의 비유의 핵심은 어디까지나 하느님 나라에 있다. 이 비유에서는 농부의 수동성과 땅의 능동성이 대조된다.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한다.”(4,28) 여기서 ‘저절로’(αὐτομἀτη)란 말이 중요하다. 하느님 나라는 어김없이 수확 때가 돌아오듯이 반드시 도래한다는 것이다(4,29). 농부는 이 어김없이 다가오는 수확의 때를 알기에 거름을 주고 가꾸면서 성장 과정에서 오는 고통을 감수하고 인내하며 기다린다.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도 어떤 상황에서도 낙담하거나 두려워해서는 안 되며, 의심하지 말고 확신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하느님 나라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럼에도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시간을 주신다. 이 시간은 하느님 나라의 시간으로서 수확을 향하여 걸어가도록 초대된 은총의 때이자 인내와 기다림의 때이다. 이 시간은 ‘희망의 때’가 될 수도 있지만 ‘심판의 때’가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예수님의 복음 선포로 하느님 나라라는 경이로운 사건에 섭리적으로 말려들었다. 이제 그분을 떠나 살 수 없는 우리는 하느님 나라를 ‘거절하든지' 아니면 ‘동참하든지’ 분명한 선택을 해야 한다. 하느님께로 가는 영적인 길, 정의와 평화의 길, 사랑의 길에 있어 어정쩡한 중립지대는 허용되지 않는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에 동참한다고 하여도 양다리를 걸치는 어정쩡한 태도로 시간을 보내며 살아간다면 결코 ‘수확’이라는 풍요로운 미래, 곧 행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 나라가 어김없이 도래할 때까지의 일상의 시간을 어떻게 사느냐이다. 예수님의 오심과 재림 사이, 곧 ‘이미’와 ‘아직’ 사이를 살아가는 우리는 삶의 순간들을 시련의 시기로 보고 사랑으로 견디어나가야 할 것이다. 이 중간 시기에 우리는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믿으며 희망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지금’ ‘여기에서’ 일상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내고, 필연코 오게 될 하느님 나라를 맞이하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느님만이 우리의 희망이요, 하느님 안에 살아가는 사람이 곧 희망이기 때문이다. 겨자씨만한 선의와 실낱같은 사랑의 호흡을 지닌다면 그래도 삶은 가치 있고 의미 있음을 잊지 말자! 믿음 안에서 좀 더 느긋해지도록 하자!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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