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연중 제1주간 토요일
복음: 마르 2,13-17:
예수께서는 돈벌이에 대한 탐욕으로 가득 찬 레위가 세관에 앉아있는 것을 보셨다. 그가 받은 새 이름은 마태오였다. ‘마태오’라는 이름은 ‘선물 받은 사람’이란 뜻으로 거룩한 은총의 위대한 선물을 받은 사람에게 어울리는 이름이다. 그는 탐욕에 젖은 세리 생활에서 떠나 주님을 따른 사람이다.
“나를 따라라.”(14절) 이 말씀은 당신을 닮으라는 말씀이다. 발걸음으로 그분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생활방식을 따르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머문다고 말하는 사람은 자기도 그분께서 살아가신 것처럼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1요한 2,6) 이것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다.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14절) 주님의 명령 한 마디에 마태오가 모든 것을 버리고 빈털터리이신 주님을 따랐다. 말씀을 통하여 그를 외적으로 부르시고 주님께서는 내적으로도 보이지 않는 선물을 주시어 당신을 따라다닐 수 있게 하셨다.
예수께서는 마태오를 부르시고 그와 함께 식사하시면서 많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하셨기 때문에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님을 비난한다. 그러나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어울리시는 것은 그들의 구원을 위한 것이다. 그래서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17절) 말씀하신다.
그분은 의로운 이들을 건강하다 하시고, 죄인들을 병들었다 하셨다. 그러기에 병든 사람들은 자기 힘을 자랑해서는 안 된다. 자기 힘이 아무리 세다 하여도 스스로 구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문제는 건강하지도 않으면서 스스로 건강하다고 생각하여, 의사를 찾지도 않을 뿐 아니라 성가시게 여기며 때리기까지 한다. 자기 병을 제대로 알고 고치기 위해서는 그만한 고통이 따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태 9,13) 우리는 누구도 완벽하게 의로운 사람은 없다. 모두가 죄인이기 때문에 “주님, 구원을 베푸소서. 의로운 이는 사라져 버렸습니다.”(시편 12,2)라고 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의인이 되도록 기도해야 한다. 우리가 간절히 바라고 그렇게 노력하면 그렇게 되어 갈 것이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성령의 은총이다. 성령의 은총으로 치유되고 도움을 받지 않으면 그러한 일이 이루어지기는 힘들 것이다.
예술가가 투박한 돌을 아름답게 조각하여 멋진 예술작품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그 돌을 귀하게 다룬다. 예수께서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까닭은 우리가 죄인인 채로 그냥 남아있게 하시려고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다. 조각가이신 주님께서는 우리를 투박한 돌을 보시듯 하신다. 투박한 돌이 아니라, 앞으로 만드실 작품을 생각하시며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온전히 그분의 말씀을 따르도록 하여야 한다.
- 조욱현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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