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아름다운 글

내 마음의 그릇

수성구 2014. 5. 3. 08:19

내 마음의 그릇




잠기운이 도시를 덮고 있을 첫새벽에 시장엘 가면
첫 이슬을 물고 나는  새들을 만날 수 있다
흙 묻은 신발들
뭉툭한 손들
어느새 잠 소리를 털고 우렁차게
가격을 흥정하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들
행복하다.
정겹다.



아침상을 마련하기 위해
빠른 눈길로 찬거리들을 쫒고 있는 엄마들의 눈길이
생기로 넘친다.
벅적거리는 시장통에
벅적거리는 여유로움도 있다.
청국장을 명태찌개를 후루룩 소리 내며
침 넘어갈 정도로 맛있게 먹는 힘 좋은 아저씨들의
모습이 나를 살게 한다.
새벽시장에 다녀오면
내 가슴엔 꽃 한 송이가 피어난다.
시장통에 머물러 있던 이들이 한 숟갈 한 숟갈 건네준
그 싱그러움이 내 가슴에 꽃을 피워 준다.



생선가게, 야채가게를 휘돌아
모퉁이를 돌면
반짝반짝 빛나는 별들이 있다.
밤에는 별빛으로...
낮에는 제 빛으로 쉼 없이 빛을 내는
갖가지 그릇들이 내 꾀죄죄한 얼굴을 보며
장난스레 웃고 있다.
살 것도 아니면서 몸을 이리저리 조심스레 돌리며
좁은 가게로 발을 들여놓은 내 모습에
새벽 눈곱을 떼고 웃는 것 같다.
능숙한 주인의 그릇 내놓는 솜씨에
올망졸망한 그릇에서부터
크나큰 공간을 홀로 차지한 비대한 그릇 몸뚱이들의 자리를
어찌 그리 잘 아는지...
쓸 일도 없으면서 나처럼 생긴 종지를 보고 미소 지었다.
쬐그만 한 귀퉁이도 차지하지 못하고
다른 그릇 위에 얹혀 있던 종지가 내 모습이었다.



작디작은 '나'라는 그릇
작아도 너무 작아서 늘 삐쳐 있는 반항기 어린 소년처럼
입이 한 뼘은 나왔었는데...
거대한 공간을 차지한 큰 그릇이고 싶었는데
가장 화려한 중심이고 싶었는데
왜 나는 종지인가?
크기에만 집착했던 아주 어리석었던 시절에는
내가 봄비에 씨를 키우는 꽃이라는 걸 몰랐었다.



시장통을 메운 이들이 각각의 자리에서,
가장 자기다운 모습으로 생기 있는 시장을 이루는 것처럼
내 색깔대로, 내 그릇이 생김새대로 생기를 품어 냄을 미처 알지 못했다.
내 안에 무엇을 담아낼까.
야채가게 아저씨를 닮은 꿈도 좋고,
무거운 리어카를 힘차게 밀고 나가는 아저씨의 단단한 의지도 좋다.
그릇가게 아저씨의 섬세함도 좋다.
내 안에 생명을 귀하게 대하는 마음 고운 나무 하나 키웠으면 좋겠다.



-  김선명 스테파노 수사, 마음 싹이 움트는 그림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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