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주님의 향기

못 드린 선물

수성구 2021. 12. 17. 03:43

못 드린 선물

12월 셋째주 대림 제4주일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분

(루카 1.39-45)

 

못 드린 선물

(강태현 신부. 의정부교구 일산성당 부주임)

 

초등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강아지를 키우게 되었다.

손바닥만 한 강아지가 너무 귀여워 같이 노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그런데 어느 날. 자고 일어났더니 강아지가 죽어 있었다.

너무 슬퍼서 한참을 울었다.

살아있는 생명의 죽음을 처음으로 경험한 날이었다.

 

 

신학생 시절 하루는 아버지가

아들. 나중에 신부님 되면 아버지 선물로 이스라엘 성지 순례 보내줘..하셨다.

그러나 아버지는 내가 사제 서품을 받고 보름후에 암 판정을 받으셨다.

사제서품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기쁜 선물을 받음과 동시에

내가 가장 사랑했던 아버지의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아버지를 낫게 해달라고 수없이 기도했지만.

1년 반의 투병 생활을 하다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가셨다.

그 빈자리는 지금도 너무나 크다.

 

 

나는 신부가 되어 아버지께 성지 순례를 선물할 때가 되었디만

그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되었다.

시간이 흐른 지금도 마음 한 켠에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내 주변의 많은 이들을 떠나보냈다.

내 가족들과 친구도 있고.

다정하게 지내던 신학교 동기도 있었다.

어느 한순간도 슬프지 않은 적 없었고.

하느님 앞에 간절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사랑하는 이의 빈자리는 항상 깊은 슬픔으로 다가온다.

그 대상이 누구이든 슬퍼하고 후회하고 아파하는 것은 모두가 같다.

같이 있을 때는 소중한 것을 몰랐다가 떠나보내면

그 소중함을 깨닫는다. 그래서 많은 후회도 한다.

 

 

더 잘했어야 하는데........

더 자주 찾아봤어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도 바로 이것일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내는 데에 충분한 준비가 어디 있겠는가?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느님이 계셔서 참 다행이다.

그리스도인에 죽음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다.

지금은 내 곁에 없어 슬프고 힘들겠지만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릴 것이라는 믿음이 희망을 품게 한다.

 

 

언젠가 나도 이 세상의 여정을 마치고 하느님 앞에 나아갈 것이다.

그때는 내가 떠나보냈던 사랑하는 사람들과 다시 함께할 것이다.

 

 

대림의 마지막 주일을 보내고 있다.

곧 성탄이 다가온다.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 말이 있다.

우리 삶에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것만큼 큰 아픔이 있을까?

하지만 이 아픔을 희망으로 바꾸시는 분이

곧 우리 삶 가운데에 오신다.

믿는 이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가톨릭 다이제스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