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가면서

길 위에서의 생각

수성구 2021. 11. 21. 03:56

길 위에서의 생각

 


집이 없는 자는
집을 그리워하고
집이 있는 자는
빈 들녘의 바람을 그리워한다

나 집을 떠나
길 위에 서서 생각하니
삶에서 잃은 것도 없고
얻는 것도 없다

모든 것들이
빈 들녘의 바람처럼
세월을 몰고
다만 멀어져갔다

어떤 자는 울면서
웃을 날을 그리워하고
웃는 자는 또 웃음 끝에
다가올 울음을 두려워한다

나 길가에 피어난
풀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지 않았는가를

살아 있는 자는
죽을 것을 염려하고
죽어가는 자는
더 살지 못했음을 아쉬워한다

자유가 없는 자는
자유를 그리워하고
어떤 나그네는
자유에 지쳐 길에서 쓰러진다

-류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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