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하늘을우러러

죽음은 바른 고해를 가르친다

수성구 2021. 6. 5. 06:20

죽음은 바른 고해를 가르친다

한 수도회 신부가 중병에 걸린

어느 부인의 초청을 받아

마지막 고해를 듣고

사죄경을 염하려고 손을 드는데

시커먼 쇠손이 그 손을 잡아챘다.

 

신부는 이상히 생각하고 부인에게

“여보세요, 부인! 당신이 혹시 무슨 죄를

빠뜨린 것이 없소?” 라고 물었다.

“결코 그런 일이 없습니다. 신부님

저는 나흘 동안 고해를 준비했습니다.”

라고 부인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신부는 잠깐 눈을 감고 기도하고 나서

사죄경을 염하려고 하는데

또 다시 그 쇠손이 말렸다.

신부는 다시 부인에게

“여보세요, 부인! 혹시 부끄러워서

고해하지 못한 죄가 없습니까?”

라고 물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신부님은

저를 모욕해도 분수가 있지요. 제가

그래 모고해를 하는 줄 아십니까?”

라고 분개했다.

신부는 또 다시 사죄경을 염하려고

했지만 그 시커먼 쇠손 때문에

할 수가 없었다.

 

이 이상한 사실 속에는

하느님의 무슨 암시가 숨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 신부는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부인에게 애원했다.

“부인! 당신의 영혼을 스스로

배반하지 마시고, 당신의 영혼을

지옥에 빠지지 않게 하십시오!”

그때야 부인이 부르짖기를,

“신부님! 사실 제가 15년 전부터

모고해로 살아왔습니다.”라고 한다.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모고해는 생각만 해도 머리털이

곤두서는 일이다. 지옥불에

타는 것도 참혹한 일이겠지만

이 세상에서 느끼는 양심의 가책과

공포와 불안과 떨림도 참혹한 일이다.
참으로 죽음은

바른 고해를 우리에게 가르친다.

성경도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거룩하고도 유익한 생각이다.”

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고해할 때마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은 준비가 된다.

이번 고해가 임종의 고해라고

생각해야 한다.

이말은 일부러 그런 생각을 하라는

뜻이 아니다. 다음에 고해하기까지

우리가 살아 있으리라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갑자기 죽은 예가 드물지 않다.

저녁 식사를 잘 하고

밤에 이불 속으로 들어간 우리가

아침에 꼭 일어나리라고 누가

보증하겠는가?

 

- <영혼의 聖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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