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주님의 향기

사랑을 가르친다고?

수성구 2021. 5. 7. 05:12

사랑을 가르친다고?

5월 둘째주 부활 제6주일

서로 사랑하여라 (요한 15-9-17)

 

사랑을 가르친다고?

(정도영 신부. 안동교구 마원 진안리 성지 담당)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과연 사랑을 잘 실천하고 사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때로는 다른 사랑을 실천하고 살기 때문이다.

그리스 철학에서 사랑을 에로스와 필리아. 아가페 세 가지로 구분한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아가페적인 사랑인데 가만히 보면

에로스와 필리아적인 사랑을 실천하면서 마치 아가페적인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예전 어느 본당에서 부활이나 성탄 대축일 때마다 독창을 고집하는 분이 있었다.

물론 노래를 못 부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바이브레이션이 심해서 듣기에 편하지만은 않았다.

성가대에 다툼이 생겨 한동안 성가대 없이 전례가 계속되었는데

그때부터 그분도 성당에 발길이 뜸해졌다.

알고 보니 어느 작은 개신교회로 가 그곳에서 열심히 독창을 하신다는 것이었다.

그분은 성가를 사람들을 위한 봉사로 생각하는 마음보다

자신의 노래로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것이 아닐까.

이분은 에로스적인 사랑을 실천하고 계셨던 것이다.

 

 

또 한편 필리아적인 사랑에 머무는 사람도 있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미사에 참례하고 기도도 많이 하고 성경공부도 열심히 하는 분이셨다.

그리고 본당에서 단체를 만들고 신자들을 교육하는데도 열성적이었다.

그분의 교리 지식과 신앙심은 대단했다.

그래서 본당의 레지오 꾸리아 회합때는 모두가 그분의 지시에 따랐다.

하지만 그분을 존경하는 사람은 없었다.

왜냐하면 그분은 머리로 구상한 신앙생활을 사람들에게 가르치려고만 했기 때문이다.

 

 

나 역시 한때 그런 어리석음을 저질렀다.

청소년 사목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교리를 더 알게 하고

신앙심을 키우겠다는 목표로 프로그램들을 진행했었다.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2박3일 동안 교육을 하면서 아이드릐 짐을 검사하고

핸드폰을 빼앗고 취침 시간에 감시하고...

그러다 어느 날 이것이 예수님의 사랑인가? 의문이 들었다.

그 프로그램 안에 학생들에 대한 기본 사랑이 담겨있는가 반성해보았다.

 

 

나는 아이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가르치려고만 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후부터는 학생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든 것들을 바라보고 진행하게 되었다.

사랑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사랑 하는 것이

곧 사랑을 가르치는 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에로스나 필리아적 사랑이 전혀 필요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사랑을 거쳐서 더 높은 사랑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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