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막 교리상식

세례성사 ③ (「가톨릭 교회 교리서」 1223~1228항)

수성구 2021. 4. 29. 05:02

세례성사 ③ (「가톨릭 교회 교리서」 1223~1228항)

 

[더 쉬운 믿을교리 해설 - 아는 만큼 보인다] 115. 세례성사 ③ (「가톨릭 교회 교리서」 1223~1228항)

 

그리스도의 피로 죄가 씻기는 원리

 

예수님의 피 흘리심으로 모든 죄가 씻기는 것은 아니다. 오직 ‘믿음’이 있는 이들만이 깨끗해진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리스도의 죽음이 내 죄 때문임을 믿어야 세례의 효과가 발휘된다.

교회는 “세례는 죄의 용서를 위한 첫째가는 주된 성사이다”라고 말하고, 그 죄가 씻기는 방법으로

“세례는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 우리를 결합시키고 우리에게 성령을 준다”(985)라고 설명합니다.

세례로 그리스도와 결합하여 그분의 성령으로 죄가 씻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원리를 구체적이고 시원하게 이해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철환 작가의 「연탄길 1」 중 ‘사랑은 사람을 포기하지 않는다’라는 글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현수는 공사현장에서 일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용직 청년입니다.

그런데 손을 다쳐 깁스하여 보름 동안 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생계가 막막한 상황에서 터벅터벅 걷다 보니

고급 아파트 단지가 나옵니다. 아파트 단지의 고급 승용차들을 보니 울화가 치밉니다.

 

마침 그때 발밑으로 공이 떼굴떼굴 굴러옵니다. 공 위에는 ‘수진’이란 이름이 쓰여 있습니다.

현수는 나쁜 마음을 갖습니다. 공을 찾아 달려온 아이에게, “수진아, 너 수진이 맞지?

아저씨는 아빠 친구야! 아저씨가 아이스크림 사 줄까?”라며 아이를 유인합니다.

 

현수는 아이를 자신의 숙소로 데리고 와서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아이를 묶을 줄과 테이프를 사러 슈퍼로 갑니다.

집에 돌아온 현수는 아이가 사라진 사실을 알고 깜짝 놀라 뛰쳐나가 아이를 찾습니다.

 

아이가 약국에서 나오고 있었습니다. 현수는 아이의 어깨를 한 손으로 잡고 흔들며 “내가 어디 가지 말라고 했지.

너 엄마한테 전화했지?”라며 소리 지릅니다. 아이는 놀라서 “아저씨 손 다쳤잖아요…”라고 울먹이며 밴드를 내밉니다.

 

그제야 제정신이 든 현수는 “수진아, 우리 빨리 엄마한테 가자. 사실은 아저씨 아빠 친구 아니야.

거짓말해서 미안해”라고 말합니다. 수진이는 “알아요. 아빠는 몇 달 전에 하늘나라로 가셨어요”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왜 따라왔니?”라고 묻는 말에 수진이는 “아빠도 병원에서 아저씨처럼 붕대를 감고 있었어요”라고 말합니다.

현수의 눈에서 후회의 눈물이 멈추지 않습니다.

 

세상에 죄를 없애는 것은 ‘사랑’밖에 없습니다. 모든 죄는 사랑의 부재에서 생겨납니다.

사랑은 자신을 내어주는 ‘피 흘리는 희생’입니다. 그리고 사랑으로 씻겨지는 죄란 인간의 이기적 ‘본성’입니다.

현수의 나쁜 마음은 수진의 희생적인 사랑으로 눈 녹듯 씻겼습니다.

 

우리 안에도 사랑의 희생으로 씻겨야 하는 나쁜 본성이 있습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은 피를 흘리셔야만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창에 찔린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피는 죄를 씻는 세례의 예형입니다.(1225 참조)

 

그런데 예수님의 피 흘리심으로 모든 죄가 씻기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믿음’이 있는 이들만이 깨끗해집니다.

현수가 수진이의 희생을 사랑이라 믿고 받아들일 때 그 마음의 죄가 씻기는 것처럼, 우리도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리스도의 죽음”(1225)이 내 죄 때문임을 믿어야 세례의 효과가 발휘됩니다. 현수가 수진이의 희생을 믿었을 때

자신의 죄도 수진이와 함께 죽었습니다. 사랑으로 인한 나의 죽음이 타인 안의 죄의 본성을 죽이는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죽음과 하나” 될 때, 나의 죄도 “그분의 죽음과 하나”가 됩니다.

이렇게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통하여 “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1227)

 

그리스도의 피가 그래서 내 죄의 죽음이고 새로운 생명의 원동력입니다. 그리스도의 피 안에 죽음과 생명이 공존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피는 곧 성령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피와 성령의 작용으로 교회 안에서

죄의 용서가 이루어지도록 하늘 나라의 열쇠를 받았습니다.”(981)

따라서 ‘피의 세례’는 또한 “성령에 의한 재생과 경신의 목욕”(티토 3,5)이라 불립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입습니다.’”(1227)

우리도 성령의 세례로 그리스도를 입어 아버지 앞에서 그리스도로 살게 됩니다.(갈라 2,19-20 참조)

이렇게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거처하심으로 내 죄의 자리가 사라지게 됩니다.

 

[가톨릭신문, 2021년 4월 18일, 전삼용 신부(수원교구 죽산성지 전담 겸 영성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