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주님의 향기

하숙집 인연

수성구 2021. 3. 27. 04:26

하숙집 인연

하숙집 인연

(이은혜)

 

태어나 처음으로 가족과 떨어져 살게 되었던 스무 살.

엄마랑 둘이서 대학교 근처 전봇대에 붙은 전단지를 보고 무작정 하숙집으로 찾아갔다.

막막했지만 엄마는 주님께서 해결해 주시니 걱정 말라고 묵주기도를 바치면서 그 집으로 향했다.

신기하게도 대문에 천주교인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십자가상과 성모상이 보였다.

학교랑은 조금 거리가 멀었지만. 천주교 신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집에 살게 되었다.

 

 

대학 생활을 시작하고 조별과제를 하다 보니 하숙집이 너무 멀어 불편했다.

학교 바로 옆 아파트에서 하숙하던 친구가 자기 집에서 과제를 하자고 있다.

그 집에도 예쁜 성모상과 십자가상이 있었다.

그 집 주인 아주머니는 일하고 돌아왔을 때 혼자 있는게 싫어 하숙을 시작했단다.

나는 이상하게 그 집에 살고 싶었다.

 

 

1학기 마칠 무렵. 친구한테서 연락이 왔다.

학교를 그만두게 되어 방을 비우게 되었으니 들어 오겠냐는 것이었다.

마침 첫 번째 하숙집 주인이 이사하게 되어 기가 막힌 타이밍에 새 하숙집에 들어갔다.

그런데 나는 공부를 핑계로 미사에 잘 나가지 않았따.

이렇게 계속 미사를 빠지다간 엄마한테 혼날 것 같아 오랜만에 주일미사에 갔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그날따라 성당에 아무도 없었다.

 

 

돌아가는 길. 아주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안나야. 어디니?

저 성당 갔었는데 아무도 없어서 다시 집으로 가고 있어요.

안 그래도 나도 미사 가려고 친구한테 연락했더니 월드컵경기장에서

대전교구 60주년 미사를 드린다고 하는구나. 같이 가겠니?

그날 처음으로 함께 미사를 드렸다.

사실 아주머니는 미사뿐만 아니라 성당 봉사활동도 하고 싶은데

사업이 너무 바빠 성당에 나 갈수 없었다고 했다.

 

 

그 대신 매일 아침 기도를 하며 쉰 살이 되면 성당으로 돌아오겠다고 하느님과 약속하셨단다.

그런데 그해 내가 그 집으로 들어가게 되어 아주머니는 주님께서 나를 보내주신 것 같다고 했다.

아주머니는 워낙 바쁜 분이었다.

한 번은 저녁에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시켜 먹으라면서 안방에 돈 있는 곳을 알려 주셨다.

테이블 위에는 꽤 많은 돈이 들어 있는 통이 놓여있었다.

아주머니가 나를 많이 믿고 계신다는 것을 느꼈다.

한동안 하숙생들 아침은 차려놓으면서도 아주머니는 식사를 못했다.

나는 아주머니가 운전하면서 드실 수 있도록 한입 크기 주먹밥을 몇 번 만들어 드렸다.

아주머니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사람들에게 `얘가 참 마음이 깊어` 하며 어제 일처럼 자랑하신다.

지금도 여전히 연락하고 찾아 뵙는 신기한 인연이다.

 

 

엄마랑 첫 하숙집을 구할 때나 새로운 하숙집을 구할 때도

신자인 집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다.

딸을 사랑하는 부모님과 주님을 잊지 않고 기도한 아주머니 덕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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