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향기의 샘[시. 기도,,좋은 글]

강은 가르지 않고, 막지 않는다​

수성구 2021. 1. 18. 02:00

강은 가르지 않고, 막지 않는다

 

​​

압록강에서

- 신 경 림 -

강은 가르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을 가르지 않고

마을과 마을을 가르지 않는다.

제 몸 위에 작은 나무토막이며

쪽배를 띄워 서로 뒤섞이게 하고,

도움을 주고 시련을 주면서

다른 마음 다른 말을 가지고도

어울려 사는 법을 가르친다.

건너 마을을 남의 나라

남의 땅이라고 생각하게

버려 두지 않는다.

한 물을 마시고 한 물 속에 뒹굴며

이웃으로 살게 한다.

강은 막지 않는다.

건너서 이웃 땅으로 가는 사람

오는 사람을 막지 않는다.

짐즛 몸을 낮추어 쉽게 건너게도 하고,

몸 위로 높이 철길이며 다리를 놓아,

꿈많은 사람의 앞길을 기려도 준다.

그래서 제가 사는 땅이 좁다는 사람은

기차를 타고 멀리 가서 꿈을 이루고,

척박한 땅밖에 가지지 못한 사람은

강 건너에 농막을 짓고 오가며

농사를 짓다가, 아예

농막을 초가로 바꾸고

다시 기와집으로 바꾸어,

새터전으로 눌러 앉기도 한다.

강은 뿌리치지 않는다.

전쟁과 분단으로

오랫동안 흩어져 있던 제 고장 사람들이

뒤늦게 찾아와 바라보는

아픔과 회한의 눈물젖은 눈길을

거부하지 않는다.

제 조상들이 쌓은 성이며 저자를

폐허로 버려 둔 채

탕아처럼 떠돌다 돌아온

메마른 그 손길을 따듯이 잡아 준다.

조상들이 더 많은 것을 배우기 위하여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수없이 건너가고 건너온

이 강을 잊지 말란다.

강은 열어 준다, 대륙으로

세계로 가는 길을,

분단과 전쟁이 만든 상처를

제 몸으로 말끔히 씻어 내면서.

강은 보여준다,

평화롭게 사는 것의 아름다움을,

어두웠던 지난 날들을

제 몸 속에 깊이 묻으면서.

강은 가르지 않고, 막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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