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멀미를 하는 이유
신자들과 새해인사를 나누다가 ‘차멀미’에 관한 얘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간혹 차멀미를 하는 분이 있는데 멀미란 게 왜 생기는 걸까요?
그리고 차멀미를 하는 분들은 흔히 버스 앞자리에 앉으라고 하는데
그 이유가 뭘까요? 또 멀미가 심한 사람도 직접 차를 운전할 때는
전혀 멀미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앞이 훤히 보이는 버스 앞자리에 앉거나 직접 운전을 할 때는,
지금 내가 달리는 도로가 왼쪽으로 휘어졌는지 혹은 오른쪽으로 쏠릴지 하는
것들을 미리 알 수 있고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멀미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즉 멀미란 것은 내가 어느 쪽으로 나갈지, 그래서 몸이 어느 쪽으로 쏠릴지
예측할 수가 없는 상황에 생겨나는 현상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앞에 펼쳐진
새해, 이 한 해 동안 내게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를 불안감 내지는 기대감이
우리에게 울렁증, 멀미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래도 ‘새해 희망’이란 게 있습니다. ‘올해는 작년보다는 뭔가 낫겠지.
분명 올해는 작년보다는 나아질 거야. 암, 꼭 그래야지.’라는 희망입니다.
올해도 작년과 똑같이 살아야 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지요.
작년과 다르기 위해서는, 새해를 새롭게 맞이하기 위해서는 내 행동방식이
작년과는 달라져야 합니다. 엄두를 못 냈던 일도 용기 내서 해봐야 하고,
끊을 게 있다면 끊어야 합니다. 버릴 게 있다면 버려야 하고, 떠날 일이 있다면
과감히 자리를 털고 떠나야 합니다. 이런 과감하고 새로운 결심을 ‘회개’라고
하는 게 아닐까요?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 4,17)
오늘은 ‘해외 원조 주일’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참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그 열심 덕분에, 짧은 기간에 도움을 받던 입장에서 남을 도울 수 있는,
나눌 수 있는 입장이 된 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가 제대로 살려면, 그저 맹목적으로 ‘열심히’ 사는 것 대신
‘행복하게’ 사는 길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 더구나 종교가 일러줘야 할 것은
개인적 차원에서의 행복이 아니라,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공동체적 가치,
공동체적 행복을 일깨워야 할 때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얼마 전
프란치스코 교황님 말씀은 마음에 담을 만한 말씀입니다.
“과거에는 유리잔이 가득 차면 흘러넘쳐 가난한 자들에게도 그 혜택이
돌아간다는 믿음이 있었지만, 지금은 유리잔이 가득 차면 마술처럼 유리잔이
더 커져 버린다. 그래서 가난한 자들에게는 아무것도 돌아가지 않는다.”
물이 가득 차면 아래로 흘러넘치는 게 자연의 이치인데, 그럼에도 잘못된
편법이나 탐욕 때문에 막혀버린 자연의 순리….
마음에 되새겨볼 만한 말씀입니다.
서울대교구
이명찬 토마스 신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