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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의 뜻..아름답고 멋진 님|◈─……

수성구 2019. 4. 29. 06:35

아리랑의 뜻..아름답고 멋진 님|◈─……행복가득한곳

       

아리랑 : ‘아름답고 멋진 님
     


우리의 전통 민요인 아리랑 노래는
          우리 민족의 애환(哀歡)과 민족 정서(情緖)가 담긴 노래이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10자),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10자),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10자),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10자)


연인(戀人)들이 부르는 연가(戀歌), 아리랑!

아리(娥利)’는 ‘아름답고 멋진’이란 뜻이다. ‘아리’의 쓰임새는 첫째 ‘아름답고 멋진’의 뜻으로 쓰인다. 한강의 원래 이름이 ‘아리수(水)’이다. 즉 아름답고 멋진 강물이다. 현대 한국어에서는 ‘아리따운(아리+다운)’에서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한편, 몽골에서 '아리'는 ‘성스럽다’ ‘깨끗하다’ 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둘째, ‘아리’는 상사병이 나도록 ‘사무치게 그리운’의 뜻으로도 쓰인다. 우리말에서 ‘마음이 아리다’ 뜻은 상사병에 걸렸을 때나 마음의 상처를 받았을 때의 표현이다.

랑(郞)’은 ‘낭군(郎君)’ 혹은 ‘님’이란 뜻이다. 그래서, ‘아리랑’은 ‘아름답고 멋진 님’이란 뜻이다. 한편, ‘쓰리랑’은 ‘아리랑’의 둘째 뜻과 같은 의미로 쓰이고 있다. ‘마음이 쓰리다’라는 말은 ‘마음이 ‘아리다’와 같은 말이다. 즉 ‘쓰리랑’은 마음이 아리고 ‘쓰리도록 그리운 님’이다.

아라리요!’는 ‘알라!’ 라는 뜻이다. ‘아리랑 고개’는 ‘아름답고 멋진 님’이 넘어가는 고개이고, ‘나’는 사랑에 빠져있는 나(我)를 뜻하며, ‘십리’는 결코 멀지 않은 십리(十里) 길을 뜻하며, ‘발병(發病)’은 발병(發病)나는 것을 뜻한다.



나라와 민족을 위한 충절(忠節)의 노래, 아리랑!


고려 말엽에 조선 창업을 반대한 고려 충신 72현(賢)이 황해도 개성 만수산(송악산) 아래 두문동에 숨어 지내다가 그 중 전오륜을 비롯한 7명이 강원도 정선으로 은거지를 옮기고 고려 왕조에 대한 충절을 맹세하여 여생을 산나물을 뜯어 먹고 살았다. 1392년 그들은 고려 왕조에 대한 흠모와 두고 온 가족 및 고향에 대한 그리운 심정을 정선 아리랑을 통해 노래했다. “눈이 오려나, 비가 오려나, 억수 장마 지려나! 만수산(송악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소.”

아리랑은 고려) 말엽에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성립되던 왕조 교체기에 개성의 송악산(만수산) 두문동에서 1392년 만들어졌다. 두문동은 고려가 멸망하자 고려의 신하 72명이 조선 태조 이성계의 회유에 굴복하지 않고 충절과 지조를 지키며 모여 살던 곳이다. 두문불출(杜門不出)이란 말이 여기에서 유래 되었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새로 개국하였지만, 개성 송악산 두문동(杜門洞)에서 충절과 지조(를 지키며 사는 ‘아름답고 멋진 사람’을 표방했으며, 그것을 찬미하는 ‘아리랑’ 노래가 생겨난 것이다. 두문동 72현의 충절과 지조의 외침이었다.

아리’란 말은 ‘아름답고 멋지다’라는 뜻이며, ‘아라리(娥羅利)’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했는데 ‘아름답고 비단처럼 멋지다’라는 뜻이다. '아라리가 났네'는 ‘아름답고 비단처럼 멋진 일이 생겼네’라는 뜻으로 이해 할 수 있다. 결국, ‘아리랑’은 충절과 지조를 지키며 ‘아름답고 멋진 사람’으로 살고자 했던 두문동 72현들의 고귀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아리랑은 단순한 민요나 유행가가 아니라 기울어 가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던 충신들의 삶과 죽음의 서사시(敍事詩)였던 것이다.

개경 송악산 두문동에서 ‘아리랑 아라리요’ 라는 노래가 울려 퍼지기 시작하자, 전국적으로 온갖 형태의 참요(讖謠)들이 이에 화답하며 창화(唱和)하였다. 그 이후, 아리랑은 국난을 여러차례 극복하면서 한민족의 혼이고 민요(民謠)의 정수가 되었다. 또한, ‘아리랑’은 외면당하고 압박당하는 사람들의 자존심을 회복하고자 했던 사람들의 자존적 표현과 충절의 외침을 대변하는 노래가 되었다.

조선시대의 상류층들은 아리랑을 외면하였기 때문에 아리랑의 개념에 대한 사상적 기반이 무너지고 영양 공급이 끊겼으며 하층민과 서민들에 의한 한(恨)풀이 형식의 단순한 민요(民謠)로 취급되었다. 하지만, 민간에서만 조심스럽게 불리던 ‘아리랑’은 1926년 10월 01일 나운규 감독의 영화 ‘아리랑’을 공연하게 됨으로써 조선의 노래로 공인되었다.


일제의 억압과 차별에 억눌렸던 한국 민족의 잠재적인 민족애를 표현함으로써 ‘아리랑’ 노래는 우리 민족의 상징적 노래로 성장하게 된다. 특히 나운규 감독이 만든 무성 영화 '아리랑'(1926년)의 개봉은 전국에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항거(抗拒) 정신을 실은 '아리랑' 노래가 유행하게 되는 촉발제가 되었다.

또한, 일제시대에 의병 활동, 독립 운동 및 3.1 운동 등을 계기로 아리랑이 크게 부흥되는 현상이 일어났다. 일제는 조선인들이 일본군의 총부리 앞에서도 아리랑을 부르며, 나라와 민족에 대한 충절(忠節) 의지를 굽히지 않는 것을 보고 아리랑을 금지시키고, 아리랑 노래를 수거하여 없앴다.

아리랑은 고려 말엽에 두문동 72현들이 기울어 가는 그들의 국운(國運) 다시 회복하고자 충절의 외침에 의해 출발하였기 때문에 일제 시대에 나라를 잃고 온갖 억압과 설움 속에서 살아야 했던 식민지 민중들에게 민족적 독립(獨立) 의지를 불태우는 촉발제가 되기도 하였다.



역사적 원상(原傷)을 풀어나가는 특유의 언어, 아리랑



정선 아리랑(강원도), 진도 아리랑(전라도), 밀양 아리랑(경상도)을 묶어서 전통 아리랑이라고 한다. 하지만, 경기 아리랑은 특정인의 창의적인 윤색을 거쳐 인위적으로 변이되었다는 뜻에서 신민요 아리랑으로 분류함으로써 전통 아리랑과 구별한다. 나운규 감독의 영화 ‘아리랑(1926)’에서 비롯되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경기 아리랑은 신민요 아리랑이 잇따라 발생할 수 있는 동기 구실을 다한 것으로 생각된다. 신민요 아리랑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대중 가요화한 아리랑이며, 전통 아리랑에서 산업 사회의 대중 노래로서 살아남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 것이다. 결국, 아리랑은 전통 민요 → 신민요 → 대중 가요 같은 길을 걸어갔다.

1930년대 이후 숱한 신민요 아리랑이 잇따라 창작되었을 때, 경기 아리랑은 본조 아리랑으로도 호칭되었거니와 그것은 경기 아리랑이 신민요 아리랑의 본류라는 뜻이다. 그 후, ‘종두 아리랑’은 천연두 예방 주사를 널리 보급시키기 창작되었고, ‘한글 아리랑’은 문명 퇴치 교육의 보급을 위하여 각기 창안된 것이며, ‘독립군 아리랑’은 독립군의 사기 고취를 위하여 특정한 목적을 위하여 창작된 것이다. 이들은 민요의 텃밭인 민간 밖으로 벗어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리랑의 기원을 민족적 차원에서 살펴보면, 역사적 원상(原傷) 의식의 표현이다. 아리랑을 푸념이나 넋두리라고 부를 수 있을 때 그것은 아리랑이 역사적 원상(原傷)을 풀어나가는 특유의 언어이다. 서러움. 애달픔. 원한을 말하게 되면, 아리랑이 지닌 역사적 원상(原傷)이 불러일으킬 감정 및 정조를 지적하는 것이 되고, 애원성이라고 하게 되면 역사성 원상에 대해 아리랑이 지닌 소리로서의 애절함을 지적하게 되는 것이다. 아리랑은 삶을 달래고 애간장을 삭이면서 풀어내는 소리이며, 원한과 아픔을 풀어내는 넋두리나 푸념이기도 하다. 아리랑은 체념의 하소연인가 하면 강한 삶의 의지의 표현이었고, 익살 떨기의 넉살 부림이기도 하였다



한민족(韓民族)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노래, 아리랑


▲ 조용필의 꿈의 아리랑 공연 영상



가수 조용필은 ‘꿈의 아리랑’이라는 노래에서 아리랑 고개는 ‘희망의 고개’ 라고 노래했다. 아리랑 노래는 우리의 애국가처럼 부르는 노래이다. '아리랑' 노래에는 한민족의 혼(魂)이 스며있다. 아리랑에 숨겨져 있는 충절과 지조의 정신을 가슴에 새겨야 하며, 조상의 위대한 문화적 유산을 잘 계승해 나가야 한다.

2000년 12월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식에서 조수미가 부른 노래가 바로 아리랑 노래이다. 2002년부터 세계 구전(口傳) 무형 유산의 보존 및 전승을 지원하기 위해 유네스코(UNESCO)에 신설된 상(賞)의 이름이 바로 ‘아리랑 상(Arirang prize)’이니, 이미 아리랑은 세계적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1991년 일본 지바(千葉)에서 개최된 ‘세계 탁구 대회’에서 ‘아리랑’이 남북 단일팀의 단가(團歌)가 되어 남북 화합과 협력의 상징으로 자리 매김된 후, 2000년 시드니(Sydney) 올림픽을 비롯한 각종 국제 스포츠 대회에서 한반도 기(旗)와 아리랑 노래가 통일 한국의 상징으로 기능하고 있다. 이것은 남북한 양쪽과 세계 127개국에 흩어진 한민족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노래는 ‘아리랑’ 이상의 것이 없다.

아리랑은 2012년 06월 유네스코에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재를 신청했고, 무형 유산 위원회 산하 심사 보조 기구(Subsidiary body)로부터 2012년 11월 ‘등재 권고’ 판정을 받았으며,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개최된 제7차 무형 유산 위원회에서 2012년 12월 05일 최종 등재되었다.


이로써 한국은 종묘 제례. 종묘 제례악. 판소리. 강릉 단오제. 강강술래. 처용무. 줄타기. 태껸 등 총 15개의 인류 무형 유산을 보유하게 되었다. 문화재청은 아리랑에 대해서 “특정 아리랑이 아니라 후렴구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로 끝나는 모든 형태의 아리랑 노래를 등재 신청했으며, 지역별로 독특한 아리랑이 존재한다는 점, 처한 환경이나 기분에 따라 즉흥적으로 지어 부를 수 있다는 점, 지역과 세대를 초월해 광범위하게 전승된다는 점 등을 강조했다.

아리랑은 다양한 사회적 맥락 속에서 지속적으로 재창조되며 공동체 정체성의 징표이자 사회적 단결을 제고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아리랑의 등재로 무형 유산 전반의 가시성이 향상되고, 대화 증진, 문화 다양성 및 인간 창의성에 대한 존중 제고 등이 이루어질 것이다. 실제로 아리랑은 다른 세계 무형 유산과 달리 국내뿐만 아니라 중국. 만주. 몽골. 카자흐스탄의 해외 동포가 만든 아리랑까지 다양한 지역에서 포괄적으로 전승되고 있다.


아리랑과 관련된 민요 및 노래는 아리랑 목동(박단마), 영암 아리랑(하춘화), 쓰리랑(유지나), 꿈의 아리랑(조용필), 강원도 아리랑(강원도), 경기 아리랑(경기도), 진도 아리랑(전라도), 밀양 아리랑(경상도), 정선 아리랑(강원도) 등이 있다.



/ 씨앤엠 케이블 방송 내용




▲ 김연아 - 아리랑 (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