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지고 꺾인 마음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면, 저는 고개를 들 수 없습니다.
부끄러운 짓이나 못된 생각을 자주 했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 저는 그다지 좋지 못한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가난, 질병, 허약한 몸 때문에 이런저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더 열심히 노력했고, 지금은 그런대로 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힘든 과정을 겪으면서 제 자신이 독해지고 거칠어졌나 봅니다.
때로는 저도 모르게 벌컥 화를 내거나, 불쑥 거친 행동을 합니다.
그런 부끄러운 장면이 생생하게 떠오를 때마다,
저는 그 기억을 말끔히 지우고 싶었습니다. 감추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 못난 부분도 이제는 저의 일부가 되어 제 안에 자리 잡아 버렸습니다.
저는 저 자신을 위하여 기도한다는 것을 몹시 어색해 한 적이 있습니다.
어쩌면 그것도 욕심이란 마음이 들었습니다. 보잘것없는 제가 뭘 잘했다고,
뭘 바랄 수 있을까 하는 어리석은 생각도 했습니다.
그만큼 하느님과 거리를 두었나 봅니다.
매달리고 조를 만큼 가깝지 않다고 여겼나 봅니다.
그저 불쌍한 저 자신을 들여다보면서 한숨만 지었습니다.
제 가슴 안에 계실지도 모르는 하느님을 보아야 하는데,
좀 더 가까이 다가서지 못하고 먼발치에서만 하느님을 바라본 셈입니다.
그것도 마음이 켕겨서 고개를 똑바로 들 수조차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 전직 대통령 한 분이 이런 글을 썼습니다.
“만일 나의 속마음을 영화 스크린에 비춘다면
나는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을 것입니다.”
또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용서 프로젝트 설립자 프레드 러스킨 교수는
‘약점이 있어 인간’이라고 했습니다.
더불어 제게 큰 위안이 된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부서지고 꺾인 마음을 하느님, 당신께서는 업신여기지 않으십니다.”
(시편 51,19)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처음 대했을 때는
‘부서지고 꺾인 마음’이란 강한 어감 때문에 거리감을 두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생각해볼수록 인간의 부족함과 그런 부족함을 지닌 인간에 대한
주님의 사랑이 전해졌습니다. 언젠가 어느 강론에서 들은 말입니다만,
‘주님의 자비를 믿는 사람이 신앙인’이라는 말씀도 기억났습니다.
주님은 ‘돌아온 탕자의 비유’에서처럼, 회개한 사람을 더 좋은 자리에 앉히십니다.
제가 부끄러운 잘못을 뉘우치고 더 좋은 사람으로 거듭났다는 말은 물론 아닙니다.
저는 아직도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르고는 또 다시 고개를 떨구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부끄러워하면서도,
부서지고 꺾인 제 마음을 위로해주는 주님의 말씀을 떠올립니다.
어둠의 수렁 속에서도 용기를 내어 주님의 사랑에 매달리기도 합니다.
“제 영혼이 흙바닥에 붙어 있습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저를 살려 주소서.”(시편 119,25)
김승월 프란치스코 / 시그니스(가톨릭커뮤니케이션협회)서울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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