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
오래전 제가 사목했던 본당 근처에 몸이 많이 불편하셔서 봉성체를 하셨던
할머니 한 분이 계셨습니다. 제가 그 본당에 부임해서 가장 먼저 방문한 곳
역시 그분의 집이었습니다.
“할머니, 혼자 사세요?” /
“신부님, 우리 집식구는 세 명이에요.” /
“예?” /
“성모님, 예수님, 그리고 나. 이렇게 세 명이 함께 살아요.”
그래서 제가
“요셉 성인만 불쌍하게 됐네요.”라고 농담을 하자 할머니께선 “그러네요!”
하시고는 이내 까르르 웃으셨습니다.
“신부님, 저는 정말 그분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혀 외롭지 않아요.”
할머니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습니다.
그로부터 일 년 정도가 지난 후에 할머니는 병세가 악화되어
병자성사를 받으셨는데, 그날따라 곱게 한복을 입고 계셨습니다.
“신부님! 절 받으세요.” /
“네?”
저는 깜짝 놀라 손사래를 치며 손자뻘인 제게 왜 절을 하시느냐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제 얼마 못 살아요. 마지막으로 하직 인사를 드리려고요.
이 누추한 곳에 매달 와 주신 것도 고마워서요.”
할머니는 엉거주춤 무릎을 꿇고 있는 제게
불편한 몸으로 자꾸만 절을 하려고 하셨습니다.
저는 정말 할머니와 영원한 이별을 하게 될 것만 같아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러자 할머니께서는 오히려 저를 위로하셨습니다.
“신부님, 나는 성모님, 예수님과 같이 있으니 어딜 가도 무섭지 않아요.”
그 후 채 한 달이 못 되어 할머니는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임종을 지켰던
신자들이 할머니가 정말 편안한 표정으로 숨을 거두셨다고 했습니다.
“난 성모님, 예수님과 같이 살아요.”라고 말씀하시며
소녀처럼 활짝 웃으시던 그 할머니의 미소는 지금도 생생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청년 요셉에게 천사는,
약혼한 처녀 마리아가 성령으로 아이를 잉태하리라는 소식을 전합니다.
요셉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습니다.
요셉은 얼마나 많이 당황했을까요?
하지만 더 당혹스러운 사람은 당사자인 마리아였습니다. 천사의 말인즉,
그가 낳을 아들은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분이라는 것입니다.(마태 1,20-21 참조)
그 아들의 이름은 임마누엘. 이는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뜻입니다.
‘하느님께서 함께하신다’라는 말씀은 성경과 이스라엘 역사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주제입니다.
하느님은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차마 내버리지 못하시는 분입니다.
마리아가 두려움과 고통을 겪을 수도 있는 이 사건을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주님께서 함께하신다는 깊은 믿음에서 가능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니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어둠의 음산한 골짜기를 지나간다 하여도 무섭지 않을 것입니다.(시편 23,4 참조)
늘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은 나의 모든 것을 아시고 나의 힘이 되어 주십니다.
그래서 고통에 신음하고 억울함에 서러운 우리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힘을 내어라.”
서울대교구
허영엽 마티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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