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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 영화차를 이용한 야간 영화상영 장면입니다. TV가 없던 시절
농촌지도소에서는 마을을 순회하면서 영화를 상영하여 영농기술습득 및 주민 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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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촌진흥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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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 가족이 감자냉상을 하느라 분주한 모습이네요. 그 시절엔 출산율
저하가 사회 문제화 되지는 않았죠. 사진에 나온 애들만도 4남매네요. 왼쪽에 서 있는 여자애가 어린애를 업고 있는데도, 일손을 돕기 위해 밭에
나온 모습이 가슴 찡해지네요.(제공:축청북도농업기술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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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농업기술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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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번기에 4-H회에서 탁아소를 운영하여 일손을 보태기도 했습니다.
60년대 무렵의 모습입니다. 수원시 율전동 탁아소이니 그 시절 수원도 농사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시골이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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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촌진흥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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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식시간을 이용해 영농서적을 보면서 새로운 영농기술을 익히고
있네요. 그때는 소득증대의 부푼 꿈이라도 있었는데, 지금 농촌의 현실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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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농업기술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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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내기 전에 쟁기로 논을 갈고 흙덩어리를 부수기 위해 써레질을
하고 있습니다. “소 없이는 농사 못 지어” 라는 말은 괜히 있지 않네요. 1930년대 우리 농촌의 모습입니다.(제공:다카하시고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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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카하시고시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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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나무를 쌓아서 누에고치를 짓고 있습니다. 마당은 물론 지붕
위까지 활용하고 있습니다.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누우면 하늘서는 별이 쏟아지고 지붕위에서는 눈이 내린 듯 새하얗게 보였습니다. 그러다가 새근새근
잠이 들곤 했던 그 시절입니다.(출처:축청북도농업기술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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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농업기술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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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똥 장군을 지고 가는 모습이죠. 그때는 인분도 소중한
거름이었답니다..(제공:다카하시고시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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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카하시고시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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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활개선부원에서 새로 개발한 작업복의 우수성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출처:축청북도농업기술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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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북도농업기술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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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쥐잡기 대회가 열렸네요. 가장 많은 쥐꼬리를 모아오는 학생을 뽑는
대회입니다. 왼쪽 여학생들 초 단발머리가 참 우습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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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촌진흥청 |
| 그리고, 아래 사진은 맛객(글쓴이)이
제일 좋아하는 사진입니다. 백 마디 천 마디 말보다 이 한 장의 사진이 그때를 잘 대변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박한 마음으로 정직하게 일하며
살았던 그때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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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릿단을 지고 가는 자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웃음이 나오기도
하지만 그 웃음 뒤에 아련한 그리움과 어떤 슬픔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저만의 느낌인가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