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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선수

수성구 2013. 11. 2. 08:00

행복한 선수


행복한 선수 '버디 퀸'으로 불리는 박지은 선수는 다른 선수와는 달리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미국으로 건너 가 골프를 시작하여 아마추어 시절 55승을 거둔 그녀를 언론은 '여자 타이거 우즈'라고 불렀다. 프로가 된 이후엔 LPGA 통산 6승을 거뒀으나 고질적인 부상으로 기대만큼 꽃을 피우지 못하다가 작년 6월에 은퇴를 공식 발표했었다. 최근 그녀는 은퇴 경기를 마친 후, ‘행복한 골프는 무엇일까요?’라고 선문선답하듯 기자들에게 먼저 질문했는데, 그 말의 배경에는 한 골프계 인사로부터 ‘행복하지도, 즐겁지도, 그렇다고 간절하지도 않아 보이는 골퍼가 적지 않다’는 뼈아픈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나라 골퍼들은 대체로 경제적 이유로 어려서부터 혹사에 가까운 훈련과 계속되는 승부에 지쳐 선수 생명이 짧아져 가면서 문제가 되어 최근 국정감사에서도 지적될 정도로 겉과 속이 다른 골프 선수들의 일은 어제오늘 일만이 아니었다. 박지은 선수도 이러한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마지막 은퇴 경기 후 기자들에게 “나는 승부에도 강하고 삶도 풍요로운 골퍼를 길러내고 싶다.”라는 작은 바람을 애기했던 것이다. 나는 그 기사를 보며 문득 인생도 골프선수처럼 승부도 필요하겠지만, 그것을 떠나 박 선수가 애기했듯이 여유 있고 행복한 선수는 될 수 없을까라는 막연한 바램 속에 행복한 인생을 고민해 보았던 것이다. 그녀는 좋은 부모 만나 고생을 별로 안 했을지는 모르나, “7번 아이언을 아버지가 대신 휘둘러 주지는 않으셨다.”라는 말이 내 가슴에 오랫동안 파장을 일으켰다. 환경적인 여건은 부모로서 어느 정도 마련해 줄 수 있지만, 골퍼들이 가장 많이 친다는 7번 아이언은 반드시 본인이 쳐야하는 현실 속에 자신도 그렇지만 내 자녀는 어떻게 살아야만 쫓기지 않고 행복한 인생선수로 오랫동안 연명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봤던 것이다. 골프선수나 장거리 인생을 뛰어야 하는 우리는 풍요한 삶을 원한다면 뭐든 깊이 빠지지 말아야 한다. 세상 모든 일들이 깊이 빠지면 결단코 오래 갈수도 없고 행복할 리가 없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처럼 지나침은 부족함과 마찬가지이기에, 우리에게 인생 레이스에서 날마다 중용처럼 지나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은 적절한 상태를 유지해야만 길게 갈 수 있고 또한 가는 동안 행복한 삶을 영위 할 수 있다. 불이 머리로 치솟는 다는 주화입마(走火入魔)에 빠진 인물들은 시기심과 질투 그리고 더 나아가 저주와 한을 통해 점점 더 강해진다. 그 강함은 적이 아닌 이웃을 쫓아내는 헛된 자만이다. 그 불을 끄는 데는 물이 필요하다. 물은 무엇인가. 물은 조건 없는 사랑이다. 물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섬김이다. 물은 하나가 되게 하는 화합이다. 불은 우리 생활에 꼭 필요한 도구지만 지나치면 없는 것보다 못하다. 불과 함께 물을 적절하게 사용한다면 불은 모두에게 유익한 에너지가 된다. 골프를 하지만 골프를 하지 않는 것처럼 집을 짓지만 집을 짓지 않는 것처럼 돈을 많이 벌고 있지만 도무지 돈 냄새가 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용이다. 우리에겐 불도 필요하지만 물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 필요하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만 인생 경기에서 지치지 않고 완주할 수 있게 된다. 이렇듯 뭘 열심히 하면서도 다른 이에게는 티내지 않는 물 같은 중용의 자세가 필요한 것은 그래야 경기를 끝까지 감당함은 물론이요 인생경기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행복한 인생은 즐길 줄 아는 사람이다. 뭘 하든 즐길 줄 사람은 이미 행복한 인생을 사는 셈이다. 즐기기 위해 골프를 하는 것이 아니라 골프를 함으로 즐거워하는 것처럼, 인생도 즐기기 위해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든 즐거워하는 인생이라면 많은 연금을 받는 일보다 더 신나는 일이다. 같은 일을 해도 유독 더 스트레스를 잘 받는 사람은 과정과 결과를 중요시하는 똑 부러지는 성격의 소유자들이 많다. 어느 유명한 골퍼가 말했다. “70%만 생각하자.” “70%의 힘으로만 스윙하자..” 서둘지 말고 힘들이지 말고 즐기는 마음으로 가볍게 치면 생각 이상으로 인생이 잘 풀릴 수가 있다. 리처드 바크는 ‘어떤 일을 하고 싶어질수록 그것은 더 이상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일을 의무적으로 하는 이에겐 기쁨이 없다. 일하면서 자신이 기쁘지 않은데 어찌 일의 효용성을 찾겠는가. 사실 우리가 일에 투자한 땀에 대한 보상은 노력 끝에 얻어지는 무엇이 아니라 일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성숙하게 바꾸어가는 모습 자체가 일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인생은 생각대로 되질 않는다. 나는 분명히 골프든 모든 인생사에서 힘주지 않고 여유를 갖고 즐기며 살아가고 있다 해도 누구를 동반자로 만나느냐에 따라 경기양상은 또 달라진다. 카롯사는 ‘인생은 너와 나의 만남이다’라고 말했듯이, 인생에서 만남을 통해 모든 것이 결정된다. 만남을 통해 내 자신의 빈 것이 채워지고 만남을 통해 인생의 진리를 알아간다. 허나 세상은 만만치가 않다. 부부간에도 사제간에도 교우간에도 동료간에도 좋은 사람 만나기란 하늘의 별따기만큼 힘들다는 것을 알고선 인생은 고해(苦海)라고 노래를 부른다. 어느 때 부터인가 나는 어떤 관계에서 누굴 만나든 좋고 나쁘고를 평가하기 전에 하나님이 내게 보내 준 그 사람에 대한 의미는 무엇인가. 만약 그 미션을 안다면 그와 나에게 기적은 일어난다. 또 하나는 좋은 파트너를 찾기보단 내가 좋은 동반자가 되기로 마음먹는다. 텃밭에 꽃을 심듯이 물을 주고 잡초를 뽑고 돌을 고르므로 잘 자라나 그 꽃의 원래 모습의 아름다운 모습과 열매를 맺을 수 있다면 그도 좋겠지만 과정 속에 나는 더 하늘에 뿌리를 내릴 것이기에 그를 보며 내가 더 행복해 한다. 황혼기에 좋은 친구 세 명만 있으면 더없이 행복한 인생이라고 말들을 하는데, 평생 내 자신이 좋은 동반자가 되어 줄 세 사람만 있다면 하늘이 열리고 신의 은총은 온 대지 위에 촉촉이 적힐 것이다. 주여, 젊을 땐 훌륭한 사람을 만나고 싶었는데 이젠 모든 조건 다 필요 없고 그냥 말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습니다. 당신이 앞 뒤 꽉 막힌 나를 내치지 않으시고 지금까지 동역자로 인정해 주시니 고맙고 감사할 뿐입니다. 이제 어떤 일이든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기쁨으로 동역자로서 누구와도 일할 수 있도록 은혜나려 주옵소서. 2013년 11월 2일 토요일 강릉에서 피러한(한억만)드립니다. ◆클릭<호수와 세상사이에서>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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