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새벽을 열며

2017년 4월 22일 부활 팔일 축제 내 토요일

수성구 2017. 4. 22. 07:44

2017년 4월 22일 부활 팔일 축제 내 토요일|새벽을 열며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7년 4월 22일 부활 팔일 축제 내 토요일

제1독서 사도 4,13-21

그 무렵 유다 지도자들과 원로들과 율법 학자들은 13 베드로와 요한의 담대함을 보고 또 이들이 무식하고 평범한 사람임을 알아차리고 놀라워하였다. 그리고 이들이 예수님과 함께 다니던 사람들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14 그러나 병이 나은 사람이 사도들 곁에 서 있는 것을 보고는 아무 반박도 하지 못하였다.
15 그래서 그들은 사도들에게 최고 의회에서 나가라고 명령한 다음, 저희끼리 의논하며 16 말하였다. “저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저들을 통하여 명백한 표징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에게 알려진 터이고, 우리도 그것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17 그러니 이 일이 더 이상 백성 가운데로 퍼져 나가지 않도록, 다시는 아무에게도 그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엄중히 경고만 합시다.”
18 그리하여 그들은 사도들을 불러 예수님의 이름으로는 절대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지시하였다. 19 그러자 베드로와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여러분의 말을 듣는 것이 하느님 앞에 옳은 일인지 여러분 스스로 판단하십시오. 20 우리로서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1 그들은 백성 때문에 그들을 처벌할 방도를 찾지 못하고 거듭 위협만 하고 풀어 주었다. 그 일로 백성이 모두 하느님을 찬양하고 있었던 것이다.


복음 마르 16,9-15

9 예수님께서는 주간 첫날 새벽에 부활하신 뒤,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처음으로 나타나셨다. 그는 예수님께서 일곱 마귀를 쫓아 주신 여자였다. 10 그 여자는 예수님과 함께 지냈던 이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곳으로 가서, 그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였다. 11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서 살아 계시며 그 여자에게 나타나셨다는 말을 듣고도 믿지 않았다.
12 그 뒤 그들 가운데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가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다른 모습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셨다. 13 그래서 그들이 돌아가 다른 제자들에게 알렸지만 제자들은 그들의 말도 믿지 않았다.
14 마침내, 열한 제자가 식탁에 앉아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셨다. 그리고 그들의 불신과 완고한 마음을 꾸짖으셨다. 되살아난 당신을 본 이들의 말을 그들이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15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몇 명의 교우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몇몇 형제님께서 이러한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 본당신부님께서는 정말로 좋으신 분이에요. 딱 한 가지만 빼고요. 글쎄 성찬의 전례 때에 말씀을 얼마나 느리게 하시는지 답답해 죽겠어요.”

“우리 본당신부님께서는 왜 이렇게 미사 시간에 묵상을 오래 하는지 모르겠어요. 강론 후에도 오랫동안 묵상을 하도록 하고, 영성체가 끝난 뒤에도 한참 동안 묵상을 하게 해요. 빨리 좀 끝내주시지.”

이분들의 말씀에 제가 어떻게 말했을까요? 저는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주님을 사랑하시지 않나 봐요.”

연애할 때를 생각해보십시오. 상대방에게 호감을 갖게 되면서 점점 사랑이 커지고 있을 때, 데이트 하는 시간이 길다고 불평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함께 있는 시간이 왜 이렇게 짧게만 느껴지는지 늦은 시간에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서도 계속해서 전화나 SNS 메시지를 통해 대화를 나누려고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계속해서 함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에 이 둘은 결혼을 약속하게 되지요. 아마 만나자마자 곧바로 헤어질 생각을 하면서 데이트 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만약 만나는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지면서 부담스러워지면 어떨까요? 둘은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겠지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데이트를 떠올리면서, 미사를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분명히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합니다. 그 사랑한다는 주님과 함께 하는 미사 시간입니다. 그런데 그 시간이 지루하다고 생각되고 빨리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만 들게 된다면 정말로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맞을까요?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을 한다면 미사 시간이 더 길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지 않을까요?

미사를 단순히 하나의 치루는 예식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 세례를 받고 주님의 사랑을 크게 느꼈을 때는 미사의 지루함보다는 미사의 기쁨이 더 컸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주님께 대한 사랑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의무감에 치루는 하나의 ‘일’ 정도로 여기면서 지루하고 힘들어 했던 것이지요.

오늘 복음을 보면, 마리아 막달레나가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전해도 제자들이 믿지 않습니다. 또한 엠마오로 향하던 제자에게도 나타나셨다는 말을 들어도 믿지 않았습니다. 왜 그러했을까요? 바로 주님의 약속을 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진리를 꿰뚫어 볼 수 있는 직관력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그 누구도 다시 죽음에서 살아날 수 없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하느님을 인간의 관점으로만 이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세 번이나 당신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말씀하셨지만, 그들은 새까맣게 잊어버렸던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의 사랑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때 교회 내의 모든 전례가 얼마나 은혜로운 지를 느낄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큰 기쁨과 행복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일단 웃자. 그러면 희망과 긍정이 들어갈 여유가 한층 넓어진다(오혜열).


요즘 갑곶성지에는 많은 순례객들이 찾아오십니다. 제 서울신학교 동창신부와 본당신자들입니다.


행복한 시간 만들기

여러분에게 지금 한가한 자유 시간이 주어졌다면 무엇을 하십니까? 솔직히 많은 이들이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하거나, SNS 서비스를 통해 다른 이들과 대화를 나눕니다. 이는 저 역시 예외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것을 통해 행복할까요?

영국에서 2만 명을 대상으로 자유 시간을 어떻게 보내면 행복할 지를 알아보았습니다. 가장 많은 대답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스킨십(14.2%)이었습니다. 그 뒤를 이어서 공연이나 영화 보기, 운동하기, 텃밭 가꾸기 등이 뽑혔지요. 그렇다면 한가한 자유 시간에 많이 하고 있는 인터넷이나 SNS 서비스 이용하는 것은 어떨까요? 이것은 행복에 기여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누구나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왜 행복에 기여하지 않는, 그래서 어쩌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을 선택해서 하고 있을까요? 순간의 만족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편하게 접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행복은 약간의 불편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갑곶성지 안의 예쁜 복숭아 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