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새벽을 열며

2017년 3월 23일 사순 제3주간 목요일

수성구 2017. 3. 23. 07:31

2017년 3월 23일 사순 제3주간 목요일|새벽을 열며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7년 3월 23일 사순 제3주간 목요일

제1독서 예레 7ㅡ23-28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내 백성에게 23 이런 명령을 내렸다. ‘내 말을 들어라. 나는 너희 하느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길만 온전히 걸어라. 그러면 너희가 잘될 것이다.’
24 그러나 그들은 순종하지도 귀를 기울이지도 않고, 제멋대로 사악한 마음을 따라 고집스럽게 걸었다. 그들은 앞이 아니라 뒤를 향하였다. 25 너희 조상들이 이집트 땅에서 나온 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는 내 모든 종들, 곧 예언자들을 날마다 끊임없이 그들에게 보냈다.
26 그런데도 그들은 나에게 순종하거나 귀를 기울이지 않고, 오히려 목을 뻣뻣이 세우고 자기네 조상들보다 더 고약하게 굴었다.
27 네가 그들에게 이 모든 말씀을 전하더라도 그들은 네 말을 듣지 않을 것이고, 그들을 부르더라도 응답하지 않을 것이다. 28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이 민족은 주 그들의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훈계를 받아들이지 않은 민족이다. 그들의 입술에서 진실이 사라지고 끊겼다.’”


복음 루카 11,14-23

그때에 14 예수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셨는데, 마귀가 나가자 말을 못하는 이가 말을 하게 되었다. 그러자 군중이 놀라워하였다. 15 그러나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은,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고 말하였다. 16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느라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그분께 요구하기도 하였다.
17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느 나라든지 서로 갈라서면 망하고 집들도 무너진다. 18 사탄도 서로 갈라서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버티어 내겠느냐? 그런데도 너희는 내가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말한다. 19 내가 만일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는 말이냐? 그러니 바로 그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될 것이다. 20 그러나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21 힘센 자가 완전히 무장하고 자기 저택을 지키면 그의 재산은 안전하다. 22 그러나 더 힘센 자가 덤벼들어 그를 이기면, 그자는 그가 의지하던 무장을 빼앗고 저희끼리 전리품을 나눈다.
23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



공지사항 한 가지 먼저 말씀드립니다. 제가 오늘부터 시작해서 이달 말까지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다녀옵니다. 벌써 이스라엘만 다섯 번째 다녀오는 순례길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성지순례는 아무리 많이 갔어도 항상 새로움을 얻게 되는 것 같습니다. 세계에서 유일한 성지, 예수님과 연관된 거룩한 곳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지금까지 해외에 나가도 새벽 묵상 글을 어떻게든 썼지만, 저의 경험상 이스라엘 성지순례에는 조금 힘든 것 같습니다. 인터넷 속도가 느린 탓도 있지만, 날짜에 맞춰서 미사 전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순례를 하는 장소에 맞춰서 미사를 하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님 탄생 성당에서는 ‘예수 성탄 대축일’ 미사를 봉헌합니다. 따라서 미사 강론을 위해 묵상 글을 준비해도 여러분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이번만큼은 순례 자체에 집중하고 싶은 생각도 있습니다.

아무튼 성지순례 잘 다녀오겠습니다. 4월 1일에 순례를 통해 힘을 얻은 몸으로 밝게 인사드리겠습니다. 그러면 오늘의 묵상 글 시작합니다.

자동차를 몰고 오랜만에 외식을 나온 노부부가 있었습니다. 이 부부는 한 식당에 들어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함께 나누면서 맛있게 식사를 했지요. 그리고 계산을 하고 다시 집으로 가기 위해 차를 탔습니다. 한참을 가고 있는데 갑자기 할머니께서 할아버지에게 말합니다.

“여보, 어떻게 해요. 글쎄 내가 안경을 식당에 두고 왔네. 다시 식당으로 돌아갑시다.”

할아버지께서는 계속해서 투덜거리며 말씀하십니다.

“아니, 정신을 어디다 두고 있는 거야.”, “그러기에 나올 때 꼼꼼하게 챙겼어야지.”, “늙은이 티내는 거야?”, “식당에서 벌써 한참을 왔는데 얼마나 큰 낭비야? 기름 낭비, 시간 낭비... 어떻게 할 거야?”

할머니께서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에 머리를 숙이고 가만히 듣고만 계셨지요. 그런데 식당에 다시 가까워지면서 할아버지의 투덜거림이 이상하리만큼 조용해졌습니다. 식당에 도착해서 할머니가 차에서 내릴 때, 할아버지께서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보, 식당에 가면 내 모자도 같이 가져와요.”

자기 자신의 실수는 보지 못하고 할머니에게만 뭐라 했던 것이었지요. 그런데 우리 역시 이럴 때가 많지 않았을까요? ‘나는 맞고, 너는 틀렸어.’라는 생각으로 상대방에게 적의를 보이며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의 저자인 존 그레이(John Gray)는 ‘남들이 나와 같지 않다는 점을 인정하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 다름을 인정할 때, 내가 받아들이는 세상은 넓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 다름을 인정하지 않으면 나만의 세계 안에 갇혀서 속 좁은 사람이 될 수밖에 없지요.

예수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시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무척 놀랍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에서 그분이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낸다고 비난하며 하늘의 표징을 보이라고 요구하는 자들이 나타난 것입니다. 마귀를 쫓아내는 능력이 과연 하느님께로부터 온 것이냐, 아니면 마귀의 두목 베엘제불한테서 오느냐가 관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사탄과 한편이라면 사탄의 하수인들을 공격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상식적인 말씀으로 답변하시지요. 이렇게 상식적으로도 베엘제불로부터 오는 것이 될 수 없음을 조금만 생각해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조건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 무조건 예수님은 틀렸다는 생각이 하느님의 아드님께 대한 커다란 오해를 갖게끔 했던 것입니다.

우리 역시 남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완고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러한 마음이 2,000년 전 주님을 거부하고 반대했던 마음임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내 생각의 틀을 벗어나는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오시는 주님임을 기억하면서, 내 곁에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시는 주님을 이웃 안에서 발견해야 할 것입니다.
실수는 삶과 정신의 여백에 해당한다. 그 여백마저 없다면 이 각박한 세상에서 어떻게 숨을 돌리며 살 수 있겠는가(나희덕).


어제 피정을 했던 양재동성당 전례분과입니다.


삶의 무게

아프리카의 한 부족의 마을 앞에는 넓은 강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부족 사람들은 이 강을 건너기 전에 먼저 주위에서 돌을 찾는다고 합니다. 워나 이 강의 물결이 세차기 때문에 이를 이겨내고 안전하게 강을 건너려면 돌을 등이나 머리에 짊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강의 물결을 이겨내기 위한 돌의 무게는 과연 어떨까요? 물살에 쓸려 내려가지 않기 위해서는 아무 부담 없이 들을 수 있는 가벼운 돌은 필요가 없습니다. 짊어진 돌이 무거울수록 물에 휩쓸리지 않아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에게 얹어진 삶의 무게를 떠올려 봅니다. 왜 내게만 너무 무거운 십자가라고 말하지만 그래서 너무나 어렵고 힘들다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나를 안전하게 하는 힘이 되는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이런 마음을 가지고 내 삶의 강을 건너면 어떨까요? 오히려 나를 힘들게 한다는 고통과 시련이 오히려 고맙지 않을까요? 그러면서 내 마음이 가벼워질 것입니다.

어차피 삶의 무게를 완벽하게 없앨 수 없다면.. 생각을 가볍게 하는 것이 지혜!


이스라엘 예수님 무덤 성당에서의 미사. 성지순례 잘 다녀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