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해가 이미 저물어 갈 때|―········감동ノ눈물감동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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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과 마음이 맞닿는 사람이기를
가녀린 눈웃음 한번으로 위로 받을 수 있는 사람이기를 당신과 나 그런 사람이기를
이토록 재미없는 삶에 잔잔한 미소 한번이면 녹아드는 마음이기를 당신과 나 그런 사람이기를
뭐하나 들여놓을 때 없는 그렇게 힘겨움으로 가득 찬 가슴이지만 당신과 나 그런 사람이기를
토닥이는 따뜻한 손길에 쉬어갈 수 있는 사람이기를 당신과 나 그런 사람이기를
마음 언저리 떼어주고 싶은 마음이야 한없지만 그저 마음 한 자락 느낄 수 있다면 내게 편히 기대 곤히 잠들다갈 수 있는 사람이기를 당신과 나 그런 사람이기를
마음과 마음이 맞닿아 고난과 위선 같은 어려움 없이 내가 당신을 느끼듯 당신도 나를 느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한 사람이기를 당신과 나 그런 사람이기를 소망합니다. 간절히…….
출처 : 좋은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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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해가 이미 저물어 갈 때
하루해가 이미 저물어 갈 때 오히려 저녁 연기와 노을이 더욱 아름답고
한해가 저물어 갈 즈음에야 귤은 잘 익어 더욱 향기롭다.
사람도 인생의 황혼기에 더욱 정신을 가다듬어 멋진 삶으로 마무리해야 한다.
권세와 명예, 부귀 영화를 가까이 하지 않는 사람을 청렴 결백 하다고 말하지만
가까이 하고서도 이에 물들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더욱 청렴하다 할 수 있다.
권모술수를 모르는 사람을 고상하다고 말하지만 권모 술수를 알면서도
쓰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더욱 고상한 인격자이다.
혜택과 이익 앞에서는 남을 앞지르지 말고 덕행과 일 에서는 남에게 뒤 처지지 말라
남에게서 받는 것은 분수를 넘지 않도록 하고
자신의 인격을 갈고 다듬는 일에는 몸과 마음을 아끼지 말라.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언제나 성공만 따르기를 바라지 말라. 일을 그르치지 않으면 그것이 곧 성공이다.
남에게 베풀 때, 상대방이 그 은덕에 감동하기를 바라지 말라. 상대방이 원망치 않으면 그것이 바로 은덕이다.
내가 남에게 베푼 공은 마음에 새겨 두지 말고, 남에게 잘 못한 것은 마음에 새겨 두어야 한다.
남이 나에게 베푼 은혜는 잊지 말고 남에게 원망이 있다면 잊어야 한다.
더러운 거름이 많은 땅에서는 초목이 잘 자라고 지나치게 물이 맑으면 물고기가 살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람은 때묻고 더러운 것도 용납하는 아량이 있어야 하고
너무 결백하여 독단적으로 몰아 부치려 해도 안 된다.
현명한 사람이 되려거든 사리에 맞게 묻고 조심스럽게 듣고, 침착하게 대답하라. 그리고 더 할 말이 없으면 침묵하기를 배워라.
목적을 이루기 위해 견딘 시련들이야말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가장 커다란 승리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일어난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에 있다.
당신을 괴롭히거나 분한 마음을 갖게 한 사람 이라도 용서하고 적(敵)으로 만들지 말라. 만약 용서 할 수도 없다면 차라리 잊어 버려라.
만약 내가 다른 이의 마음속에 새로운 세계를 열어 줄 수 있다면, 그에게 있어 나의 삶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그대의 운명을 사랑하라. 어떤 운명이든지 간에 항상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한쪽 얼굴은 어둡고 우울하며 다른 한쪽 얼굴은 따뜻하고 밝다.
말을 많이 하면 반드시 필요 없는 말이 섞여 나온다.
원래 귀는 닫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입은 언제나 닫을 수 있게 되어 있다.
대머리가 되는 것을 너무 두려워하지 마라. 사람들은 머리카락이 얼마나 많고
적은가에 관심이 있기보다는 그 머리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가에 더 관심 있다.
광고를 다 믿지 마라. 울적하고 무기력한 사람이 광고하는 맥주 한 잔에
그렇게 변할 수 있다면 이미 세상은 천국이 되었을 것이다.
잘 웃는 것을 연습하라. 세상에는 정답을 말하거나 답변하기에 난처한 일이 많다.
그 때에는 허허 웃어 보라. 뜻밖에 문제가 풀리는 것을 보게 된다.
아무리 여유가 있어도 낭비하는 것은 옳지 않다. 돈을 많이 쓰는 것과 그것을 낭비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불필요한 것에는 인색하고 꼭 써야 할 것에는 손이 큰 사람이 되라.
화내는 사람이 손해 본다. 급하게 열을 내고 목소리를 높인 사람이
대개 싸움에서 지며, 좌절에 빠지기 쉽다
주먹을 불끈 쥐기보다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자가 더 강하다.
주먹은 상대방을 상처 주고 자신도 아픔을 겪지만
기도는 모든 사람을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출처 : 좋은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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九鼎(구정)선사
솥을 9번이나 바꿔 건 九鼎(구정)선사 이야기. 비단을 팔아 하루하루를 근근이 살아가던 한 청년이 하루는 강원도 대관령을 넘어가다가 고갯마루에서 쉬고 있었다. 그러다 비단장수 청년은 누더기 옷을 입은 노스님 한 분이 오랜 시간을 꼼짝도 않은 채 홀로 서 있는 것을 보고는 그 스님께 다기 가서 물어보았다.
“대사님께서는 여기서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자비로운 미소를 머금고 있던 노스님이 대답하였다.
“잠시 중생들에게 공양을 시키고 있는 중일세.” 이 말을 들은 청년은 더욱 금해져서 다시 물었다.
“어떤 중생들에게 무슨 공양을 하고 계시는지요?”
“내가 움직이면 옷 속에 있는 이가 피를 빨아먹기 불편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잠시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이라네.”
이 말에 큰 감동을 받은 청년은 갑자기 세속의 삶이 부질없게 느껴졌다.
그래서 노스님의 제자가 되어 수도를 하고 싶은 미음이 일어났다. 청년은 굳은 결심을 하고는 비단 보퉁이를 팽개쳐 버리고 산길을 오르는 노스님의 뒤를 따르기 시작하였다.
마침내 오대산 東臺(동대) 觀音庵(관음암)까지 노스님을 따라온 청년이 스님께 말씀드렸다.
“저는 비단을 팔아 어렵게 실아 가는 사람입니다. 오늘 스님의 인자하신 용모와 거동에 감동 받고, 저도 수도하고 싶은 마음이 문득 솟아올라 이렇게 스님의 뒤를 쫓아 왔습니다. 부디 제자로 받아주십시오.”
“네가 중이 되겠다고? 그렇다면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지 다 하겠느냐?” “예 ! 스님께서 시키시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하겠습니다.” 이렇게 청년의 다짐을 받은 뒤에야 비로소 노스님은 겨우 출가 할 것만을 허락하였다.
그 다음 날 노스님은 행자에게 부엌에 커다란 가마솥을 옮겨 걸라고 시켰다.
청년은 스님이 시키는 대로 흙을 퍼 와서 거기에다 짚을 섞어 이기고 커다란 솥을 걸었다. 그렇게 하고 나자 이미 한낮이 지나 하루해가 기울어 가고있었다. 노스님은 부엌에 들어와 솥을 걸어 놓은 것을 보더니만 다시 이르는 것이었다.
“솥은 잘 걸었다만 이제 이쪽에서는 필요가 없어졌으니 저쪽으로 옮겨 걸어라.” 이렇게 말하고는 나기 버렸다.
솥을 9번이나 불평 없이 고쳐 건 구정선사. 청년은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전날에 정성스럽게 걸어놓은 솥을 떼어내서 옆 아궁이로 옮기고는 잔손질까지 하여 잘 마무리하였다. 얼마 뒤에 노스님이 다시 틀어오더니 화난 목소리로 꾸짖었다.
“이놈! 이것이 솥을 걸어 놓은 거냐? 한쪽으로 틀어졌으니 다시 걸어라.” 그러고는 짚고 있던 석장으로 솥을 밀어 주저앉혀 놓고 나갔다. 청년이 보기에는 틀어진 곳이 없었지만, 한 마디의 불평도 없이 묵묵하게 다시 솥을 걸었다. 청년은 이렇게 솥을 옮겨 걸고 허물기를 아홉 번이나 반복하였는데, 이는 노스님이 그에게 인욕과 하심(下心)을 청년에게 가르쳐주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노스님은 청년의 진정한 구도심을 인정하여 제자로 받아들이니 솔을 아홉 번 고쳐 걸었다는 뜻에서 九鼎(구정)이라는 법명을 내렸다. 이 청년은 그 뒤로 열심히 수행하여 뒷날 크게 명성을 떨쳤는데 그가 바로 구정 선사이다. 구정 선사의 이러한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입산출가자 들에게 좋은 귀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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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번의 인내
옛날 한 젊은이가 스님이 되기 위해 노승을 찾아갔습니다. 노승은 젊은이에게 시험에 합격하면 받아주겠다고 했습니다.
마침 솥을 새로 걸던 참이어서 젊은이에게 걸라고 했습니다. 젊은이는 행여 노승의 마음에 안 들면
시험에 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서툰 솜씨나마 정성껏 솥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노승은 말했습니다. "이쪽이 기울었네, 다시 걸게" 젊은이는 솥을 내리고 균형을 맞춘 다음 솥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노승은 다시 말했습니다. "솥의 방향이 틀렸네, 다시 걸게" 젊은이는 솥을 내리고 방향을 맞춘 다음 솥을 걸었습니다.
노승은 갖가지 이유로 솥을 다시 걸게 하였습니다. 무려 아홉 번을 트집 잡아 반복하게 했습니다. 노승이 젊은이에게 말했습니다. "계속 일을 반복하여 시키는데 자네는 화가 나지도 않나?"
그러자 젊은이가 대답했습니다. "세 번까지는 화가 났습니다. 그러나 분명 무슨 뜻이 있을 거로 생각하니 오히려 기대되었습니다. 앞으로 몇 번이든 더 반복할 자신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보통 세 번이면 화를 내고 가버리는데 자네는 아홉 번까지 참았네. 오늘부터 자네를 제자로 삼고 자네의 이름을 구정이라 부를 걸세."
그 젊은이는 후에 구정 선사로 존경받는 스님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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