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글

어버이날은 몇일 지났지만 ....

수성구 2016. 5. 11. 04:17

어버이날은 몇일 지났지만

파피님의 글을 보며 다시한번 부모님 은혜를 생각 해 보자는 뜻에서 보냅니다.

“딸 몰래 먹으려다가 들켜버렸네.” 결혼 후에 나는 미시건주의 미시건 대학이 있는 앤아버(Ann Arbor)에 일 년을 살았다. 그때에 남편은 필라델피아에 살고 있었다. 결혼 후에 일 년을 떨어져서 살은 것이다. 그리고 1978년에 남편이 시카고에 취직이 되어 2년 계약을 깨고 나도 시카고로 이사를 왔다 처음에는 아파트에 살다가 일 년 후에 시카고 북쪽에 있는 아주 작은 집으로 이사를 했다. 그때에 어머니는 동생과 이민을 오셔서 언니가 사는 샌프란시스코에 계셨다. 어머니는 손녀, 쌘디를 보기위해 일 년에 두 번 정도 시카고에 오셔서 2주일 내지 한 달을 계셨다. 그때만 해도 내가 살림을 하는데 극성이라 고추장, 간장 그리고 된장까지 담가먹었다, 초겨울에는 생선가게에서 깨끗이 다듬은 조기를 한 40-50마리를 사서 소금을 뿌려서 이틀을 냉장고에 놔두었다가 밖에서 꾸들꾸들 말려서 겨울 내내 굴비대신 먹었다. 그때에 어머니는 아파트에 사셔서 생선을 구워먹고 싶은데 냄새가 너무 나서 생선을 먹을 수가 없다고 하셨다. 이렇게 집에서 말린 조기는 냄새도 나지 않고 맛도 깨끗한 게 너무 좋다고 하셔서 샌프란시스코에 가셔서 구워 잡수시라고 말린 조기를 20마리 드렸다. 20마리밖에 안되니 언니한테는 주지 마시고 혼자 잡수시라고 했다. 그래서 말린 조기를 비닐봉투에 넣어 가지고 가셔서 냉장고에 차곡차곡 넣어 두셨다. 그리고 가끔 한 마리씩 꺼내어 팬에 기름을 조금 두르고 지져서 잡수시면 너무 좋다고 하셨다. 어머니가 혼자 사시니 언니가 그로서리를 갈 때에 어머니의 그로서리도 함께 사서 어머니가 계신 아파트에 가져다주었다. 그날도 언니가 가지고 온 식품들을 냉장고에 넣으려는데 언니가 이 말린 조기를 보았다. 참 얌전하게 깨끗하게도 말린 조기라고 어디서 이 말린 조기를 샀냐고 어머니한테 물어서 그냥 한국 식품점에서 샀다고 하셨다. 언니가 나도 이 말린 조기를 사고 싶으니 한국식품점 이름을 가르쳐 달라고 해서 할 수 없이 시카고에서 가지고 온 것이라고. 실토를 하셨다. 그리고 말린 조기 몇 마리를 언니한테 줬다고 했다. "딸 몰래 먹으려다가 들켜버렸네." 하셨다. 지금도 한국식품점에 가서 굴비를 보면 그때가 생각이 나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이 글은 오래 전에 삶의 방에 실은 글이다.

오늘 어머니날 이 글을 보면서 혼자서 웃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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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겨울이 지났는데도 아직 아침에는 공기가 무척 차갑다.

그래도 계절의 여왕인 5월이 오니

보타닉가든에는 튜립들이 한창이고

정원을 거닐면 사과꽃 향기가 바람에 실려온다.


아름다운 보타닉가든을 거닐면서 아주 오래 전에

어머니와 함께 한 봄날을 생각해본다.

그때도 이렇게 튜립이 한창인 5월인 것 같다.

이렇게 많은 튜립은 처음 보신다고 연신 신기해하시고

사과꽃 향기가 이렇게 좋은 줄 모르셨다고 하시던 어머니.


어머니가 사시던 쌘프란시스코의 작은 공간에는

크고 작은 화분에 꽃들이 항상 피고 있었다.

꽃들을 얼마나 잘 키우시던지 아프리칸 바이올렛의 작은 화분도

몇 년이 지나면 커다란 방석만큼 커지곤 했다.

길을 가시다가도 예쁜 풀꽃을 보시면 그냥 지나치지 않으시던 어머니.

귀하고 귀한 하나밖에 없는 손녀에게 가르쳐주신 첫번 말이 "예쁘다..예쁘다."였다.


보타닉가든을 거닐면서 어머니가 옆에 계시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을 해 본다.


미국에서는 어머니날은 5월의 두 번째 일요일이다.

올해는 여기 미국의 어머니날이 5월 8일이다.


어머니날에 딸네 식구들이 내려온다.

사위가 "어머니날에 요리를 하시지 말고 레스토랑에 가서

식사를 하자"고 제의를 했는데

집으로 와서 오랜만에 바비큐도 하고 편안하게 손주들도 보고 하자고 집으로 불렀다.


딸은 일주일에 두서너 번 나에게 전화를 한다.

한번 전호를 하면 거의 20분 정도 얘기를 한다.

남편이 옆에서 자주 전화하면서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을까 하고 시샘?을 한다.

나는 어머님 생전에 이렇게 다정하지 못했다.

가끔 안부의 전화만 드렸다.


딸은 가끔 나한테 "나 엄마 없으면 어떻하지?"

"엄마가 옆에 있어서 너무 좋다" 할때면 빈말이라도 얼마나 듣기 좋은지.

나는 한번도 이런 말을 어머니께 한 것 같지 않다.

참으로 무뚝뚝한 딸래미였다.

아들이 없는 친정에 "너는 아들처럼 든든하고 많이 의지가 된다,"고 자주 말씀하셨던 어머니.

그 말씀이 얼마나 저에게 도움이 되었는지 아시는지?


어머니날에 하늘에 계신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이렇게 짧은 글을 올려본다.




 

 

그리운 사람끼리 & 세월이 가면 - 박인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