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문화란
박경리 선생의 '토지' 세미나
약정 토론자로 참석하게 되었을 때다.
나는 여전한 어버버한 말투와 비논리로 인해
그 자리에 참석한 다른 분들에게 누를 끼치고 말았지만
대학을 졸업한 후 거의 처음으로 장시간
학생이 된 기분으로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었다.
그날 한 여자가 내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는 오전 열시부터 오후 여섯시까지
한 번도 자리를 비우지 않고
내 노트를 무릎에 내려놓고 열심히
발제자들과 토론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는 거의 이야기들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저렇게 즐겁게 열심일 수가 있을까,
나중엔 몰래 그를 살펴보기까지 했다.
장시간 앞뒤 자리에 앉아 있다 보니
나중에 인사를 하게 되었는데,
그는 안동에서 기차를 타고 올라왔다고 했다.
토지를 아주 감명 깊게 읽었고,
세미나가 있다기에 참석해서 토지에 대한 사람들의
다른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왔다며 해사하게 웃었다.
그 여자의 해사한 웃음 앞에서
샛노래진 내 얼굴 위에 쌓인 피로가 갑자기 부끄러워지면서
그 여자분 앞에서 수다쟁이가 되고 싶어졌다.
좋은 문화란 저절로 만들어지는 건 아니다.
바로 그분 같은 마음이
좋은 문화가 설 자리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요즘 같은 자본의 논리가 승한 시대일수록
천천히 가고 섬세히 가는 것들,
외길의 장인정신으로 철저히 매달려서
창출해낸 것들에게 힘차게 박수치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그 힘만이 좋은 문화가 뒷전으로 사라지는 일 없이
뿌리를 내릴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줄 것이다.
뿌리를 내린 좋은 문화는
어디 다른 곳으로 가는 게 아니다.
다시 새로운 힘을 가지고 박수를 쳐주고 부추겨주었던
사람들의 삶 속으로 풍성하게 흘러들어갈 것이다.
『아름다운 그늘』
(신경숙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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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은 좋은 물건이다.
그러나 만일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하겠느냐?
(성서 루가복음 14 : 34 )